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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인물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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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석(柳麟錫, 1842~1915) 상세보기 - 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수,첨부파일,내용 정보 제공
제목 유인석(柳麟錫, 1842~1915)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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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의암(毅菴), 자는 여성(汝聖), 본관은 고홍이다. 을미년에 단발령이 있은 후, 처신방법을 두고 망명하여 도맥을 지키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인사우들이 봉기하자 이를 후원하였고, 후에는 그 자신이 대장으로 추대되어 호좌의진을 영도하게 되었다. 영월에서 등단한 유인석은 곧장 제천을 장악하고, 개화정부의 명을 받드는 지방관들을 처단하였다. 이후, 친일정책의 지방거점인 충주관창부를 공략하고, 영남지방까지 병력을 파견하여 기세를 올리는 등, 을미의병기 최대 전과를 올려 사방의 의병이 크게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일본군의 공세에 견디지 못하고 제천으로 돌아온 호좌의진은 이후 주변의 여러 고을을 장악하고 사실상 군정을 실시하면서 가흥과 수안보의 일본군 병참을 공격하면서 재기의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결국 관군을 이끌고 온 장기렴의 군대에게 패하여 제천을 내주었고, 이후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서북지역에서 재기하기 위하여 서행길에 올랐다. 도중에 서상렬 같은 핵심간부를 잃고 서북지역에서의 재기도 여의치 않아 압록강을 건넜다. 이후 유인석은 만주지역에 항일운동의 근거지를 만드는데 전력하였으니, 이는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의 효시가 되었다. 한때 귀국하여 강학활동을 하면서 향약활동을 통하여 항일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으나, 정미의병이 좌절되면서 다시 블라디보스도크로 망명하여 해당지역에서 활동하던 지사들과 협력하다가 만주로 이주하여 1915년에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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