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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인물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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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金奎喆 1881~1929) 상세보기 - 제목,작성자,작성일,조회수,첨부파일,내용 정보 제공
제목 김규철(金奎喆 1881~1929)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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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는 비장(飛將), 본관은 청풍이다. 단양군 영춘면 보발리에서 출생하여 제천군 수산면 도전리로 이주하였다. 일찍이 궁내부 주사(宮內部 主事)를 지낸바 있던 김규철은 1907년 고종황제의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청풍지역에서 조동교, 신기영(申基永)등과 의병을 일으키고 의진의 중군장을 맡아 단양과 금수산(錦繡山)을 기점으로 제천, 청풍, 단양,충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이강년 의진에 참여하여 1907년 음력 9월 죽령지역에서 4백여 명을 인솔하고 일본군과 접전을 벌려 5차례의 전투를 승전으로 이끌었고, 철원 싸움에서도 대승을 하였다고 한다.

그 해 11월에 일시 체포되었으나 탈주하였으며, 이듬히 봄에도 체포와 탈주를 거듭하였다. 여름에 청풍 작성산전투에서 이강년 의진이 흩어지자 잔여 세력을 규합하여 제천지역을 중심으로 줄기찬 항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하들이나 일본군이 '날아다니는 장수( 飛將)'로 불렸을 만큼 신출귀몰한 기동력으로 전투 때마다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조직적인 독립 활동이 시작되자 김규철은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이를 독립군에게 전하기 위하여 1922년 상해 임시정부로 향하였다. 그러나 인천항에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되어 2년간 구류되었다가 서울에서 재판을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5년간의 옥고를 치렀고, 이후 집으로 돌아와 이강년의 전투기록을 간행하는데 정성을 들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김규철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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